어머니의 그림자 -17부

야설1

어머니의 그림자 -17부

야설카페 0 18403
- 탁 -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를 넘기던 동석이 서류를 접어 한쪽으로 던지며 아침에 받았던 전화를 떠올렸다.



[ 정태 에미가 위암 3기라네.. 자네한테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 그래도 정태 아버지가 아닌가.. ]



동석은 머리가 아팠다.

아무리 이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아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와 자신이 무얼 어떻게 할 수도 또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있는 것을 떠올리며 애써 장모의 전화 내용을 떨치려 애썼다.



- ... -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동석이 수화기를 집어 들며 어디인가로 전화를 걸려다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 병원이 어디라고 했지.. ]



장모가 말해준 병원 이름을 떠올려보던 동석이 이내 고개를 두어 번 가로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실을 나섰다.







- 김 과장.. -

- 네.. -

- 나 오늘 일이 있어서 이만 퇴근할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강 부장하고 의논하고 나 찾으면 없다고 그래.. 알았나.. -

- 네.. 알겠습니다.. -



업무 지시를 내린 동석이 회사를 빠져나갔다.







[ 따르르릉.. 따르르릉.. ]



- 여보세요.. -

- 나야.. -

- 네..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



한참 오후 업무에 바쁠 동석으로부터의 전화에 혜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



- 나 지금 집으로 가고 있으니까.. 삼십 분 뒤에 집 앞으로 나와.. -

- 갑자기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집에를 오시는데요 -

- 그냥 답답해서 그러니까.. 잔말말고 준비하고 나와.. 알았지.. -

- 네.. 알았어요 -



동석과의 통화를 끝낸 혜진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이제 겨우 세시 밖에 되지 않았건만 갑자기 어디를 가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혜진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 어디가시는 거예요 -

- 글쎄.. 청평이나 한번 가볼까.. -

- 청평이요.. 갑자기 거기는.. 무슨 일 있으세요.. -

- 일은 무슨 생각해보니 당신이랑 나들이 가본지도 좀 된 것 같아서.. -

- ..... -



동석의 말에 혜진이 물끄러미 동석을 응시했다.

오랜만에 다정한 말을 던지는 동석이 의아하기도 했고 휴일도 아닌 평일에 청평을 가자고 하는 동석의 태도가 못내 이상했던 것이다.











- 이봐 미스 김.. -

- 네.. -



한적한 곳에 위치한 방갈로 같은 방에서 음식을 먹던 혜진이 오랜만에 자신을 미스 김이라 부르는 동석의 부름에 짧게 대답했다.



- 우리가 만난 게 얼마나 됐지.. -

- .... -



동석의 물음에 혜진은 깊은 회한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스물 넷의 나이에 동석의 회사로 들어와 그 해에 처음으로 동석에게 몸을 빼앗기고 거의 4년 간을 동석과 지내왔음을 기억한 혜진의 얼굴에 작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한 사 년 됐나.. -

- 네..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세요.. -

- 훗.. 그냥.. 궁금해서.. -

- .... -



어제부터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동석을 혜진이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미스 김.. -

- 네 -

- 우리 정식으로 부부가 될까 -

- .... -



동석의 말에 혜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 싫어.. -

- 그게 아니라.. 갑자기 그런 말을 하시니까.. -

- 그런가.. 한번 생각해봐.. 미스 김만 좋다면 난 언제든지 오케이니까.. 알았지.. -

- 네 -



혜진의 대답을 들려오자 동석이 미소를 머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혜진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렇게 혜진에게 다가온 동석이 혜진을 살포시 끌어안으며 살짝 입맞춤을 한 뒤 혜진의 앞가슴의 단추를 풀러내려 하자 혜진이 그런 동석의 손을 잡았다.



-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이러세요.. -

- 훗.. 걱정하지 말아.. 여기는 음식이 들어오고 나서는 부를 때까지 절대 아무도 안 들어와.. -

- .... -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한 동석이 혜진의 손을 밀어내며 혜진의 옷들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동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휴일이 아닌 평일 낮에 이런 곳을 찾아오는 남녀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기대하고 이런 곳을 찾아오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곳의 모든 방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체 있었고 그것마저도 평일에는 띄엄띄엄 방을 채우기 때문에 낮의 정사를 즐기려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의 장소였던 것이다.







- 아... -



자신의 자지를 물고 천천히 얼굴을 아래위로 움직이는 혜진을 바라보던 동석의 얼굴이 찡그려지며 머리를 바닥에 눕혔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동석은 혜진은 오럴이 너무나도 자극적임을 다시 상기했다. 마치 자신이 혜진을 괴롭히는 것을 복수라도 하는 듯 혜진의 입은 마치 자신의 중심 뿌리를 모두 뽑아 버릴 듯 했고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그 능숙함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 미스 김.. 이쪽으로.. 어서.. -



동석의 말이 있었음에도 혜진은 못들은 척 혀를 내밀어 동석의 자지를 핥고 있었고 손을 뻗은 동석이 발목을 잡자 그제야 몸을 돌리며 엉덩이를 동석을 향해 돌렸다.



- 하아... -

- 흠.. -



여전히 자신의 자지를 빨고 있는 혜진의 엉덩이를 올려보던 동석이 짙은 신음을 내지른 뒤 두 손으로 혜진의 탐스런 엉덩이를 잡아 내리며 혜진의 보지에 입을 가져가자 순간 혜진이 동작을 멈춘 체 한숨을 내뱉었지만 이내 다시 동석의 자지를 입안에 물고 혀를 움직여 동석의 귀두를 자극했고 동석도 그에 질세라 혀를 보지 안으로 밀어 넣어 보지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 음.. -

- 흡.. -



한 낮 외진 곳에서 움직이는 두 사람의 육체는 몹시도 꿈틀거렸다.

서로 몸을 반대로 교차한 체 상대방의 생명의 근원지를 자신들의 입으로 공략하는 두 사람의 움직임은 쉴새 없이 계속 됐고 그만큼 두 사람의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 하아.. 그만하고 올라와.. -



지루한 힘겨루기가 끝난 듯 동석이 혜진의 보지에서 입을 떼며 말하자 혜진 역시 물고 있던 자지를 빼내고 몸을 돌려 동석의 하체를 걸치고 앉았다.



그러나 혜진은 곧바로 삽입을 하지 않은 체 자신의 보지 둔덕을 동석의 하체에 밀착한 체 천천히 앞뒤로 움직였다. 대낮의 정사가 전해주는 끈적함도 있었지만 오늘따라 왠지 다정하게 구는 동석의 태도에 조금은 젖어든 듯 혜진은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 하아.. 미스 김.. -



애원하는 동석의 말이 이어졌지만 혜진은 여전히 보지 둔덕을 앞뒤로 움직이며 빳빳이 고개를 쳐든 동석의 자지를 누르고 있었고 천천히 얼굴을 숙여 동석의 가슴에 자신의 입술을 쓸어가듯 스쳐 지나갔다.



- 아.. 그만하고... -



또 한번의 말이 이어지자 혜진이 그제야 움직임을 멈추고 천천히 다리를 들어올려 주저앉는 자세를 취한 뒤 동석의 자지를 잡아 세운 뒤 위치를 맞춰 천천히 엉덩이를 아래로 내렸고 동석의 자지가 보지에 들어오는 만큼 서서히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 하.. -



그리고 마침내 동석의 자지 모두가 보지 안으로 밀려들어오자 혜진이 세웠던 다리를 내리며 동석의 하체에 걸터앉았고 동석의 가슴을 두 손으로 짚은 체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누군가가 그랬다. 여자의 잘록한 허리는 요동치는 굴곡진 삶과 같다고..

혜진의 허리가 딱 그랬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체 혜진은 허리를 움직였다. 앞으로 뒤로 또는 좌우로 그리고 천천히 원을 그리듯 허리를 움직였고 그 허리의 움직임에 맞춰 보지 안에 들어가 있는 동석의 자지가 질 벽 이곳 저곳을 건드리는 느낌에 온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지만 혜진보다는 밑에 깔려 있는 동석이 오히려 더욱 커다란 쾌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스러지듯 자신의 품에 안긴 혜진이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하자 혜진의 생각지 못한 자극적인 행동에 동석은 쾌감의 늪으로 점점 빠져들었고 혜진의 움직임에 맞춰 허리를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하아.. 뒤로 해주세요.. -



속삭이듯 건네는 그 한마디에 동석은 자신의 몸이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혜진이 상 쪽으로 몸을 돌려 상 한 귀퉁이에 상체를 의지한 체 엉덩이를 내밀자 황급히 혜진에게 다가가 뒤쪽에서 자지를 들이밀었다.



- 흣.. -

- 하아.. 미스 김... -

- 흐흣.. 흡.. 으응... -



뒤쪽에서 밀려들어오는 동석의 자지를 느끼며 혜진은 실로 오랜만에 가식이 아닌 절정을 느끼고 있었고 밀려오는 쾌감에 온 몸을 맡긴 체 동석과의 섹스에 몰두했고 이번만은 동석이 자신을 절정으로 몰아 부쳤으면 하는 바램도 가졌다.



[ 철썩.. 찌걱.. 찌걱.. 철썩.. ]



아랫배가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와 혜진이 쏟아낸 보짓물로 인해 마찰되는 요상한 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지는 것을 느끼며 혜진은 생각보다 일찍 절정을 향해 달리는 자신을 느꼈다.



- 하악.. 자기야.. 조금만 더.. 조금 만 더요.. -

- 헉.. 헉.. 미스 김.. -

- 아흑.. 흑... 아.. 아.... 자기야...... -

- 허흑.. 헉.. 하악.. -

- 아흑.. 흑.. 아.. 어떻게... 하악... -



뜻밖이었다.

이제껏 동석과의 섹스에서 단 한번도 자신이 먼저 무너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일찍 절정을 향해 달리는 자신의 육체를 느끼며 혜진은 섹스의 절정에 흠뻑 취해갔고 곧 절정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 아학.. 악........ -

- 헉.. 헉... -



마침내 터진 혜진의 날카로운 신음 소리..

절정에 오른 혜진은 상 끝을 붙잡은 체 몸을 떨기 시작했고 보지에서 희여멀건 액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절정에 오르지 못한 동석이 계속해서 피스톤 운동을 시작하자 힘겹게 몸을 일으킨 혜진이 갑자기 몸을 돌려버리자 동석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 미스.. 김.. -

- 하아.. 하... -



당황한 동석의 목소리에 숨을 헐떡이던 혜진이 갑자기 얼굴을 숙여 자신의 자지를 물고 빨기 시작하자 동석의 얼굴에서는 당황감 대신 만족감이 서리기 시작했고 이내 눈을 감은 체 다시 쾌감에 젖어가기 시작했다.



- 아.. 아... 미스 김.. 아.... 아.......... -



그리고 곧이어 동석의 기다란 신음을 시작으로 동석은 혜진의 입안에 정액을 쏟아내기 시작했지만 혜진은 입을 떼지 않은 체 정액을 고스란히 입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울컥거리는 목의 움직임을 통해 정액을 목 뒤로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을 자지를 입에 문체로 쏟아내는 정액을 고스란히 받아 목으로 넘기던 혜진이 더 이상 입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정액의 느낌이 없자 천천히 물고 있던 자지를 빼냈고 동시에 동석이 힘에 부친 듯 바닥에 큰 대자로 누웠다.



- 하아.. 하.. 하... -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르던 동석의 눈에 자신을 따라 몸을 누이는 듯 하던 혜진이 하복부에 몸을 기댄 체 또 한번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자지 이곳 저곳을 핥기 시작하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살며시 눈을 내려 감았다.



그렇게 눈을 내려 감으며 숨을 고르던 순간 어이없게도 동석의 머릿속에 그 옛날 자신과의 섹스에서 헤어진 아내가 지금처럼 자신의 자지를 혀로 애무해 주던 것을 떠올렸고 그와 동시에 장모가 남겼던 한 마디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정태 에미가 위암 3기라네.. 위암 3기... ]



- .... -



자신의 머릿속을 휘젓는 뜻밖의 생각에 동석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혜진 역시 몸을 일으켰고 동석이 바닥에 있던 담배를 꺼내 물자 가방을 열어 휴지를 꺼낸 자신의 다리 사이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 후우... -



섹스가 끝난 뒤 습관처럼 담배를 입에 물던 동석이었지만 오늘따라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는 동석을 가만히 바라보던 혜진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팬티를 집어 걸치기 시작했다.



- 무슨 일 있으신 거 아니에요.. -

- 일은 무슨.. -



팬티만을 걸친 체 동석을 바라보고 묻자 혜진을 바라보며 동석이 고개를 가로 저었고 다시 한번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런 동석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혜진이 나머지 속옷들과 옷가지들을 챙겨 입기 시작했고 동석이 벗어놓은 옷들을 챙기자 담배를 모두 피운 동석이 혜진이 내민 옷들을 입기 시작했다.













- .... -



집으로 향하던 정태는 문득 집에 가도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저녁을 먹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엄마가 며칠동안 먹을 반찬이며 갖가지 음식을 마련해 놓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혼자 먹기에는 썰렁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걸음 옮기기도 전 정태는 다시 발길을 멈췄다. 엄마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엄마가 만들어 놓은 음식을 외면하고 밥을 사먹는 다는 것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 .... -



그렇게 다시 집으로 향하기 위하여 발길을 돌리던 순간 정태의 눈에 저 만치서 걸어오는 수아의 모습이 들어오자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그에 앞서 그런 정태를 발견한 수아가 정태 쪽으로 뛰다시피 다가오고 있었다.



- 김 정태.. 너 거기 안서.. -

- ..... -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수아의 목소리에 정태가 걸음을 멈추자 단숨에 달려 온 수아가 정태 앞으로 다가와 정태를 응시했다.



- 너 왜 자꾸 날 피하는 건데.. 학교에서도 그러고.. -

- 제가 언제.. -

- 그럼 아니라고 말할 자신 있어.. -

- .... -



몰아붙이는 수아의 말에 정태가 대답을 못하자 수아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지만 수아의 마음은 울적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허락한 정태였다. 물론 그 일로 인해 정태가 자신을 선택하리라는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일 이후 오히려 자신을 피하는 정태의 모습에서 수아는 작은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 어머니 집에 계시지.. -

- 어머니는 왜요.. -



수아의 말에 정태가 순간 당황했다.



- 너희 어머니가 저번에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셨거든.. 그래서 오늘 너희 어머니에게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려고.. 왜 안 돼.. -

- 저희 엄마가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전 들은 적 없어요.. -

- 너희 어머니가 분명 그랬어.. 내가 너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언제든지 오라고.. -

- ..... -



수아의 억지에 어이가 없다는 듯 정태가 수아를 바라보았지만 수아는 여전히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정태를 바라보았다.



- 왜 못 믿겠어.. 좋아 그럼 너희 집에 가서 내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밝혀줄게.. 가자.. -

- 어머니 집에 안 계세요 -

- 네 말은 못 믿어..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

- 정말이에요.. 외국 여행 가셔서 다음 주에나 와요.. -

- ..... -



정태의 말에 수아가 뚫어져라 정태를 응시했다.



- 그 말 정말이야 -

- 사실이에요 -

- 그럼 너 밥은.. -

- 엄마가 반찬이랑 그런 거 다해놓고 가셔서 걱정 없어요.. -

- .... -



또다시 멀뚱거리는 시선으로 정태를 바라보던 수아가 갑자기 환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 좋아.. 그 말 믿고 오늘은 내가 여기서 후퇴하지..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안녕.. -

- ..... -



자신의 할 말만 한 체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수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태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다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잠자리에 들던 동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잠들어 있는 혜진을 응시하다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가 소파에 걸터앉았다.



[ 틱.. ]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단긴 동석이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내뿜은 뒤 어두운 허공에 시선을 던졌다.



[ 정태 에미가 위암 3기라네.. 위암 3기... ]



- 후우... -



장모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은 동석이 무거운 표정으로 손에 드려진 담배 불빛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미 이혼을 통해 남남으로 돌아섰다지만 20년 가까이 살을 맞대고 살아왔던 여자였다.

더욱이 경자가 아직까지 정태의 엄마라는 사실 앞에서 동석은 애써 외면하려던 헤어진 아내의 생각에 무거워지는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 위암 3기라면.. 어쩌면 살아나기가.. 그렇다면.. 정태는... ]



동석은 무거워진 마음을 달래며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헤어진 아내가 암으로 사망한다면 그때는 정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아들을 데려와 자신과 함께 살게 하고 싶었지만 혜진과 불과 몇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정태가 그것을 받아 줄지가 의문이었고 지금도 자신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아들이 아내가 죽는다면 어쩌면 그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 .... -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동석이 어떤 결론을 내린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들고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 뚜루루루.. 뚜루루.. ]



전철에서 내려 학교로 향하던 정태가 핸드폰 소리에 황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여행을 간 엄마의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 여보세요.. -

- 나다.. -



뜻밖의 목소리에 정태는 흠칫 놀랐다.

엄마와 이혼을 한 후 연락조차 없던 아버지가 갑자기 전화를 한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 네.. 안녕하셨어요.. -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에 반감과 함께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 어디냐.. 지금.. -

- 학교 가는 중입니다.. -

- 학교.. -



학교를 가는 자신의 말을 되묻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정태는 이른 아침에 자신이 어디를 가는지 왜 묻는지 궁금했다.



-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어요.. -

- 오늘 좀 만났으면 하는데.. -

- 왜 그러시는데요 -

- 할 말이 있다.. -

- 전화로 하시면 안될까요.. 저 오늘 수업 끝나고 교수님하고 어디 좀 가야 하거든요.. -

- 그래.. 그럼.. 점심 시간 맞춰 학교 근처로 내가 찾아가마.. 이따가 다시 전화하마.. -

- .... -



통화를 끝낸 정태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무슨 일로 아버지가 자신을 보자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어두운 표정으로 맞은 편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정태는 여전히 의아한 얼굴로 아버지를 응시했다. 혹시나 했지만 정말로 점심 시간에 맞춰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오자 그 이유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이미 아버지에 대해 곱지 않은 감정을 지닌 정태로써는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 공부는 잘 되냐.. -

- 그럭저럭 하고 있습니다.. -

- 허긴.. 이 상황에서 무슨 정신으로 공부를 하겠냐.. 그래도 이 와중에 학교를 계속 나오다니.. 좀 뜻밖이구나... -

- .... -



동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정태가 의아한 시선으로 동석을 응시했다.



-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

- .... -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본 동석이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정태 앞으로 내밀었다.



- 뭡니까.. 이게.. -

- 돈이다.. 엄마한테 직접 줘야겠지만 받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받아서 병원비에 보태라.. -

- 병원비요.. -

- 그래.. 수술을 한다고 하니 병원비도 만만치 않을 거다.. 더구나 암이란 병은 돈이 꽤나 만만치 않게 들어갈 거다.. 그러니까 엄마한테는 아무 말 하지말고 할머니한테 전해 드리던지 아니면 네가 직접 병원비에 보태던지 하거라.. -

-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병원비라뇨.. 누가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요.. -

- 아버지에게 그렇게까지 숨길 것 없다.. 이미 할머니를 통해서 엄마가 입원한 걸 알고 있다.. -

- ..... -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정태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 다시 말씀해보세요.. 엄마가 입원을 하셨다니요.. 엄마는 지금 외국 여행을 가셨는데요.. -

- .... -

놀란 목소리로 묻는 아들의 말에 동석은 순간 당황했다.

장모의 말에 의하면 아내가 암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했건만 아들의 입에서는 아내가 외국 여행을 갔다고 말하고 있는 지금 동석은 누구의 말이 옳은 말인지 몰랐다.



- 정말 엄마가 외국 여행을 간 거냐.. -

- 네.. 엄마 친구 분하고 가셨어요.. -

- 이상하구나.. 네 외할머니는 네 엄마가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어제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하던데.. -

- 네.. -



놀라는 아들을 바라보던 동석이 핸드폰을 꺼내 들어 어딘 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여보세요.. -



장모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 접니다.. -

- 그래.. -

- 뭐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

- 뭔가.. -

- 정태에게 물어보니 에미가 외국 여행을 갔다고 하는데.. 어제 하신 말씀은 무슨 말씀이신지.. -

- .. 지금 혹시 정태하고 있나.. -

- 네.. -



조금 뜸을 들이며 묻는 장모의 목소리에 동석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아들을 흘끗 바라본 뒤 핸드폰을 귀에 더욱 밀착 시켰다. 무언가 이상한 감을 느낀 것이다.



- 정태는 아무것도 모르네.. 제 에미가 수술이 끝날 때까지 알리지 말라고 해서 안 알렸네.. 혹시 정태에게 모두 이야기했나.. -

- 아.. 아닙니다.. 그런 거였군요.. -

- 아직 얘기하지 않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수술 끝날 때까지 모르게 하게나.. 알겠나.. -

- 네.. 그런 거였군요..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황급히 장모와의 통화를 끝낸 동석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앞에 놓여진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 할머니가 뭐라고 하시는데요.. -

- 어.. 아버지가 잘못 들은 모양이다.. 엄마가 아니라 엄마 먼 친척 중에 누가 입원을 하셨다는 구나.. -

- 누가요.. -

- 넌 잘 모르는 사람이다.. 어서 마셔라.. 아버지도 일이 있어서 이만 가야겠다.. -

- .... -



황급히 커피를 마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정태는 여전히 의아한 시선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아버지의 말대로 먼 친척이 입원을 했다면 왜 할머니가 이미 이혼을 한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알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설사 알렸다 해도 그 말을 엄마가 병원에 입원을 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 저기.. 아버지.. -

- 어.. 왜.. -

- 정말.. 엄마 친척이 입원을 하신 겁니까.. -

- 그.. 그렇다니까.. -

- .... -



말끝을 흐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다시 무언가를 물으려는 순간 동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가자.. 아버지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가야겠다.. -

- ..... -



아버지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정태가 여전히 의아한 시선으로 걸음을 옮기는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 나중에 다시 전화하마.. -

- 네.. -



커피숍 밖으로 나와 인사를 건네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인 정태가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사라지는 아버지를 응시하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 -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가 떠오른 듯 정태가 황급히 택시를 불러 세웠다.



- 아저씨.. **동으로 가주세요.. 급하니까.. 빨리 좀 가주세요.. -

- 네.. -



택시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집이 있는 곳을 말한 뒤 정태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 뭔가.. 이상해.. 이미 이혼한 아버지에게 친척이 입원한 사실을 할머니가 알릴 리가 없어.. 더군다나 엄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고 나서는 할머니는 엄마에게조차 전화를 안 하시는데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실 리가 없어.. 절대로... ]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진 정태가 초조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창 밖을 응시했다.













[ 툭.. 턱...턱... ]



집으로 돌아와 안방으로 들어선 정태가 무언가를 찾는 듯 연신 장롱 서랍을 뒤지며 물건들을 방바닥으로 던지기 시작했고 아직 찾지 못한 듯 다음 장롱 문을 열고 다시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얼마간을 장롱 안을 뒤지던 정태가 이번에는 문갑 쪽으로 가서 서랍들을 열어보기 시작했고 무언가 뭉치 하나를 꺼내 든 정태가 황급히 그것들을 바닥으로 던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 작은 수첩 같은 것을 바라보던 정태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 .... -



주저앉은 정태가 다시 한번 손에 들고있던 것에 시선을 향한 체 천천히 겉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경자의 여권이었고 정태가 겉장을 넘기는 순간 엄마의 사진이 들어오자 더욱 놀란 눈으로 여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



여권을 바라보며 혼자서 중얼거리던 정태가 곧이어 조금 전 자신이 바닥으로 던져놓은 것들을 집어 들어 살피기 시작했고 다시 서랍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 없어... 그것만 없어.. ]



정태가 찾던 것은 의료보험증이었고 그것이 없다는 사실에 정태는 두려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이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외국 여행을 간다고 하던 엄마의 여권이 그대로 있다는 사실에서 정태는 엄마가 외국 여행을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고 그 순간 오늘 자신을 찾아 온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 허긴.. 이 상황에서 무슨 정신으로 공부를 하겠냐.. 그래도 이 와중에 학교를 계속 나오다니.. 좀 뜻밖이구나... ]

[ 수술을 한다고 하니 병원비도 만만치 않을 거다.. 더구나 암이란 병은 돈이 꽤나 만만치 않게 들어갈 거다.. ]

[ 할머니를 통해서 엄마가 입원한 걸 알고 있다.. 이상하구나.. 네 외할머니는 네 엄마가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어제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하던데.. ]



아버지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정태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고 할머니와의 통화를 끝내고 갑자기 자리를 떠난 아버지의 이상한 모습을 생각하던 정태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 딩동.. 딩동... ]

[ 쾅.. 쾅.. ]



- 할머니.. 할머니.. -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정태가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벨소리가 연신 울려대자 핸드폰을 끄고 황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 여보세요.. -

- 저에요.. 아버지.. -

- 그래.. -

- 아까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말씀 정말 잘못 들으신 겁니까.. -

- 그렇다니까.. -

-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정말입니까.. -

- 네가 그랬잖아.. 엄마 외국 여행 갔다고.. -

- 엄마 여권이 집에 그대로 있어요.. -

- .... -



여권이 집에 있다는 말에 순간 아버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태는 더욱 불안감에 휩쌓였다.



- 아버지 제발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엄마 아프신 거죠.. 그렇죠... -

- ..... -

- 아버지.. -



정태의 목소리가 고함에 가까워졌다.



- 그래.. 어차피 너도 알게 될 테니까.. 너희 엄마 병원에 입원했다.. -

- 무.. 무슨 병으로.. 아까.. 말씀하신... -

- 그래.. 암이라 더라.. -

- ..... -



귓전을 때리는 아버지의 말에 정태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어느 병원인데요.. -

- 그건 나도 모른다.. 할머니가 그냥 어제 입원을 했다고 만 말씀하셨다.. 이렇게 된 거 할머니에게 여쭤봐라.. -

- 지금.. 할머니 집이에요.. 그런데 아무도 없어요.. 할머니도.. 외숙모 님도.. -

- 병원에 가신 모양이다.. -

- ..... -



정태의 눈이 질끈 감겼고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듯 연신 고개를 좌우로 가로 저었다.



- 정말 어느 병원인지 모르세요.. -

- 그래.. 모른다.. 이제 와서 무얼 숨기겠냐.. -

- 그럼 혹시.. 외삼촌이나 외숙모 핸드폰 번호 모르세요.. 할머니가 아신다면 두 분도 아실 거 아닙니까.. -

- 미안하구나.. 외삼촌 전화 번호는 지금은 모르겠구나.. -

- ..... -

-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잘 될 거다.. -



걱정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정태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밀려왔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아버지가 엄마를 버림으로 인해 발생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랬다면 과연 자신이 엄마와 그렇게 맺어 질 수 있었을지 정태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 만약에.. 만약에.. 엄마가 잘 못 되면.. 저 어쩌면.. 아버지.. 용서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

- ..... -



자신의 말에 아버지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정태가 핸드폰을 접으며 통화를 끝냈다.



- ..... -



아버지와의 통화를 끝내고 정태는 허망한 표정으로 여전히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 엄마.. 제발... -



그리고 정태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가 아팠음에도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자신을 책망하는 원망의 눈물이었고 지금 이 순간 어느 병실에 누워있을 엄마에게 달려갈 수 없다는 막막함이 너무도 괴로워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러나 그 한편에는 그렇게 아픔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의 눈물이었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체 혼자서 병과 싸우려 하는 엄마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에 대한 눈물이었다.



- .... -



얼마를 그렇게 자리에 주저 앉아있던 정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굳게 닫혀있는 할머니 댁의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곳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 수술은 언제냐.. -

- 모레요 -



생각지도 못한 어머니의 방문에 경자가 씁쓸한 마음으로 대답을 했다.



-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요즘은 의학이 발달돼서 위암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데요.. -

- 네.. 언니.. -



어머니의 뒤에 서있던 올케의 말에 경자가 엷은 미소와 함께 대답을 하자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경자 어머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아까 정태 아버지한테 전화 왔었다.. -



경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를 응시했다.



- 정태를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 -

- 엄마.. -

- 걱정 말아라.. 아직 정태는 모르고 있을 거다.. 정태 아버지에게 내가 잘 말했다.. -

- .... -



어머니의 말에 안심은 됐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 그리고 당분간은 네 올케 언니가 병원에 있을게다.. -

- 그럴 필요 없어요.. -

- 당장 수술 끝나면 움직이지도 못할 것 아니냐.. 그때까지만 있으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

- 하지만 연희랑 수희는 어떡하고.. -

- 걱정 말아요.. 다 큰애들인데 저희들이 알아서 할 거예요.. -

- 고마워요.. 언니.. -



괜찮다는 말을 하는 언니를 바라보며 경자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자신보다 늦게 오빠가 결혼을 하고 나서는 그나마 친정 식구들 사이에서 자신을 제대로 대접해준 올케 언니였기에 경자는 진심으로 올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 그리고 난 당분간 너희 작은 어머니 댁에 가 있을 거다.. 무슨 일이 있거든 그리로 전화해라.. -

- 거기는 왜 가시는데요.. -

- 어머니 작은 어머니 댁 근처에 있는 절에 다니시잖아요.. 이번에 정태 엄마 때문에 불공드리러 가신 데요.. -

- .... -



언니의 말에 경자의 시선이 엄마에게로 향하자 경자 어머니가 시선을 돌렸다.



- 아무리 미워도 내 배 아파서 난 자식인데 어쩌겠냐.. -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경자는 왈칵 눈물이 밀려왔다.

그동안 자신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던 엄마였지만 자신을 위해 불공을 드리러 간다는 엄마의 말이 너무도 고마웠던 것이다.



- 죄송해요.. 엄마.. -

- 됐다.. 마음이나 독하게 먹어라.. 모름지기 병이란 병을 가진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더 깊어지기도 하고 낳기도 하는 거다.. -

- 네... -

- 난 이제 가야겠다.. 연희 에미는 고생 좀 하거라.. -

- 네.. 다녀오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 드릴게요.. -

- 오냐.. -

자리에서 일어난 경자 어머니가 다시 한번 경자를 가만히 응시하다 병실을 나서자 경자의 시선이 자신의 어머니를 따라 쫓아 움직였다.











[ 디리리리.. 디리리.. ]



- .... -



핸드폰 벨소리에 황급히 핸드폰을 집어 든 정태가 이내 핸드폰에 찍힌 번호를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내려놓았고 정태가 자신 앞에 놓여진 술병을 집어 비워진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벌써 비어버린 병이 두 개나 있는 것으로 보아 꽤나 오래 전부터 술을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술을 마시는 정태의 얼굴에는 취기가 서려있지 않았다.



[ 탁.. ]



술을 목으로 넘기고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정태가 손으로 입가를 훔쳐내며 다시 잔을 채웠다.



정태는 미칠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엄마의 병은 심각한 상태였고 자신에게 숨기고 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급박한 상태인 게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그런 엄마가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조차 모른 체 이렇게 술만 퍼마시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괴롭기만 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술잔을 비운 정태가 핸드폰을 집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여보세요.. -



그토록 전화를 해도 아무도 받지 않던 할머니 댁에서 누군가 전화를 받자 정태는 순간 술이 확 깨는 느낌을 받았다.



- 누구니.. 연희니.. -

- 아니.. 수흰데요.. 누구세요.. -

- 나야.. 정태 오빠.. -

- 어.. 오빠.. -

- 할머니 들어오셨니.. -

- 아니.. 아까 엄마한테 전화 왔는데 할머니 시골 가신다고 하시던데.. -

- 시골.. 어디.. -

- 몰라.. 자세한 건 안 물어봤는데.. 근데.. 왜.. -

- 수희야.. 너 그럼 아빠 핸드폰 번호 알지.. 핸드폰 번호 좀 알려줘.. -

- 아빠.. 어제 일본 출장 가셨어.. -

- 그럼.. 엄마 핸드폰은.. -

- 엄마 핸드폰 *** - **** 이야.. -

- 그래.. 알았다.. 고마워.. -



외숙모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자 정태가 황급히 다시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



핸드폰 너머에서 외숙모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정태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핸드폰을 꼭 쥐었다.



- 저 정태예요.. 외숙모.. -

- 어.. 그래.. 웬일이니.. -

- 숙모한테 뭐 하나 여쭤볼게 있어요.. -

- 뭘... -

- 저희 어머니 입원 한 병원 아시죠.. 거기가 어디인지 알려주세요.. -

-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가 입원한 병원이라니.. -

-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입원을 했다고 알려 주셨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는 것도... 외숙모도 아시죠.. 엄마가 입원한 병원이 어디인지.. -

- 정태야.. 숙모는... -

- 숙모 제발.. 제발 가르쳐 주세요... 저 지금 미칠 것만 같아요.. 네.. 숙모.. -

- ..... -



자신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숙모가 아무 말이 없자 정태는 눈을 내려 감았다.









- 정태예요.. -

- .... -

-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떡해요.. -



올케 언니의 말에 경자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잠시 눈을 내려 감았다. 그렇게 조심했건만 정태가 모든 사실을 알았다는 말에 경자는 눈앞이 캄캄했다.



- 어떡해요.. 그냥 모르겠다고 할까요.. -

- 아뇨.. 이리 주세요.. -



크게 심호흡을 한 경자가 올케 언니에게서 전화를 건네 받았다.









- 외숙모 제 말 듣고 있으시죠.. 제발 가르쳐 주세요.. -



계속해서 외숙모로부터 아무 말이 없자 정태가 다시 한번 애원하는 목소리로 외숙모를 찾았다.



- 숙모.. -

- 여보세요.. -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태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엄마였다. 분명 엄마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 엄마.. 엄마 맞죠.. -

- 그래.. 엄마야.. -

- 엄마 지금 어디예요.. 제가 빨리 그곳으로 갈게요.. 그러니까 그곳이 어디인지 말해주세요.. 어서요.. -

- 아니.. 오지마.. 올 필요 없어.. -

- 엄마.. -



의외의 말에 정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 그냥 집에서 기다려.. 그럼 엄마 며칠 있다가 집으로 갈게.. 알았지.. -

- 엄마 아프다며.. 엄마 암이라며.. 그런데 나보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빨리 말해 줘.. 어디 있는 거야.. 어디.. -

- ..... -

- 빨리 말해.. 어디야 거기.. -



정태의 고함에 사람들이 정태를 바라보았지만 정태는 아랑곳없이 엄마의 말을 기다렸고 핸드폰을 들고있는 정태의 손을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 정태야.. 그냥 집에서 엄마 기다려.. 부탁이야.. -

- 그냥 집에서 기다리라고..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엄마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나보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

- 엄마.. 안 죽어.. -

- 제발.. 엄마.. -



어느덧 정태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고 눈에서는 연신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 엄마 너 두고 절대 안 죽어 그러니까.. 며칠만 그냥 기다려.. 알았지.. -

- 싫어.. 그럴 수 없어.. 난 지금 엄마를 봐야 돼.. 그러니까.. 제발 어딘지 알려줘.. 제발.. -

- 정태야.. 엄마도 미칠 만큼 너보고 싶어.. -

- 그러니까 알려줘.. 내가 금방 갈 테니까.. -

- 아니.. 오지마.. 너오면 엄마 약해질지도 몰라.. 그러니까 엄마 혼자 이겨낼 수 있게 그냥 기다려 줘.. 알았지.. -

- 그러다 엄마 잘 못되면.. 그러면 난 어떡하라고.. -

- 엄마가 말했지.. 엄마는 너 두고 절대 죽지 않아.. 너랑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거야.. 그러니까.. 기다려.. 알았지.. -

- 아니.. 그 말 못 믿어.. 어디야 지금.. -

- 엄마가 이겨 낼 수 있게 기도해 줘.. 알았지.. -

- 엄마.. -

- 끊을게.. -

- 엄마.. 엄마.... -



이미 전화를 끊어버린 듯 아무 대답이 없자 정태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다시 핸드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 지금 저희 고객님의 핸드폰의 전원이 꺼져있는 상태입니다.. 삐 소리가...... ]



기계음을 듣고 있던 정태가 다시 핸드폰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여전히 계속해서 핸드폰에서는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음성만이 메아리 쳤지만 정태는 계속해서 핸드폰 버튼을 눌러대고 있었다.







- 꼭 그렇게 할 필요 있어요.. 몰랐으면 몰라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

- ..... -

- 다시 한번 생각해 봐요.. 정태가 있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정태도 이제 다 큰 어른인데.. -

- 혹시 다시 전화오더라도 .. 정태에게 온 거면 받지 마세요.. -

- 아가씨.. -

- 부탁해요.. 언니.. -

- .... -



경자의 말을 들은 올케 언니가 물끄러미 경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자 경자가 다시 침대에 누워 등을 돌리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올케가 경자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갔다.



- 흑.. 흐흑.. -



그렇게 올케가 병실 문을 나서며 문을 닫는 순간 경자의 입에서 오열하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경자 또한 아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상태를 가슴 아파할 사람이 아들이었기에 경자는 그런 아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고 너무나도 그리웠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혹여 수술이 잘못 되어 자신이 죽게 되더라도 아들의 앞에서 자신이 죽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수술이 잘 되어서 희망을 가진 모습만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 흐흑.. 흑.. 흑.. -



오열하는 경자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 가는 만큼 경자의 가슴 또한 점점 아프고 쓰렸다.



지금이라도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달려오게 하고 싶었다. 이 두려움과 절망감을 아들의 품에 안겨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어쩌면 자신의 옆에 아들이 있음으로 자신이 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경자는 참아냈다.

아들에게 괴로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 병마와 맞서 싸워 이겨낸 모습만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길만이 자신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를 관계에 빠져버린 아들에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 정태야.. 엄마를 위해 기도해 줘.. 엄마가 이 상황을 이겨 낼 수 있게 도와줘.. 엄마도 너랑 행복하게 더 살고 싶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손가락질해도 좋아.. 엄마에게 너만 있으면 돼.. 너만.. 네가 그렇게만 해 준다면 네가 무엇을 원하든 엄마는 네 뜻대로 할게.. 부탁해.. 정태야.. 엄마를 위해 기도해 줘.. ]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경자는 마음속으로 아들에게 부탁했다.

만약 자신이 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아들이 자신을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 남기를 바란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혹여 시간이 지나 아들이 자신을 버린다해도 그때까지 만이라도 아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을 하며 경자는 아들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 저희 고객의 사정으로 인하여 지금은... ]



- 뭐야.... -



벌써 몇 시간째 정태의 핸드폰이 불통이 되어있자 수아가 조금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 .... -



그렇게 핸드폰을 바라보던 수아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다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벨이 울려도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는 듯 하던 정태의 핸드폰이 이제는 먹통이 되어버리자 수아는 부아가 치밀었고 집에 혼자 있을지도 모를 정태를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두어 시간 전 계속해서 핸드폰 버튼을 눌러대던 정태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핸드폰을 바닥에 심하게 내동이 쳐 핸드폰이 박살났음을 알리 없는 수아는 정태가 자신을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 이봐요.. 정신 좀 차려봐요.. 이봐요.. -

- .... -



정태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향하던 수아의 눈에 아파트 입구에서 누군가를 붙들고 말하고 있는 경비 아저씨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고 잠시 후 경비 아저씨 바로 옆까지 다가간 수아의 눈에 바닥에 쓰러져 앉아있는 정태를 발견하자 놀란 표정으로 정태에게 다가갔다.



- 정태야.. -

- 어.. 아가씨.. 이 사람 알아요.. -

- 네.. 제 후배인데요.. -

- 그럼 학생인가 보군.. 이 학생 여기 사는 것 같은데 몇 호 사는 지도 알아.. -

- 네.. 알아요.. -

- 그래 그럼 집에 가서 사람 좀 나오라고 해..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질 않아... 이 정신으로 어떻게 집은 찾아 왔는지 몰라.. -

- 지금 얘 네 집에 아무도 없는데.. -

- 아무도 없다니.. 그럼 혼자 산단 말야.. -

- 아뇨.. 어머니랑 둘이 사는데.. 어머니는 지금 외국 여행 가셨어요.. -

- 그래.. 그럼 어쩐다.. -

- 제가 데리고 들어갈게요.. -

- 아가씨가.. -

- 네.. 실은 얘랑 저랑 둘이 사귀는 사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집으로 놀러 가는 중이었어요.. -

- 그래.. 그 말 정말이야..
0 Comments
제목
Category
반응형 구글광고 등
State
  • 현재 접속자 417 명
  • 오늘 방문자 2,193 명
  • 어제 방문자 2,273 명
  • 최대 방문자 5,104 명
  • 전체 방문자 952,005 명
  • 전체 게시물 44,970 개
  • 전체 댓글수 0 개
  • 전체 회원수 711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